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두 판 사이의 차이

K-위키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4번째 줄: 4번째 줄:
Johann sebastian bach
Johann sebastian bach


음악의 아버지. 엄마는 헨델. 애새끼는? CPE 바흐가 있다!
음악의 애비. 애미는 헨델. 애새끼는? CPE 바흐가 있다!


음악가 바흐 가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음악 하던 이들은 이외에도 50명 정도가 있다고 전해진다.
음악가 바흐 가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음악 하던 이들은 이외에도 50명 정도가 있다고 전해진다.

2016년 7월 12일 (화) 15:39 판

주의!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인물은 존나 똑똑합니다.
이 문서는 노오오력충도 따라갈 수 없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으니 호구가 되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누르세요.
이 캐릭터는 진짜 개씹사기라 게임을 노잼으로 만듭니다!
이 문서는 심하게 사기 포스를 풍기는 미친 캐릭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약 게임에서 이걸 골랐다면 다른 놈들까지 다 이걸 고르거나 너프를 먹거나 할 것입니다.

Johann sebastian bach

음악의 애비. 애미는 헨델. 애새끼는? CPE 바흐가 있다!

음악가 바흐 가문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음악 하던 이들은 이외에도 50명 정도가 있다고 전해진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 주자 중 하나로 클갤에선 바본좌라 불릴 정도로 지명도도 높다.

베토벤과 모차르트, 멘델스존, 드뷔쉬 같은 전설적인 음악가들도 바흐를 존나 숭배하듯이 했다.

바흐의 대위법과 합창법은 수 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뒷사람이 번호를 분류하면서 곡의 종류별로 나눴다.

앞쪽은 종교곡, 뒤쪽은 기악곡.

설마 젊을때 성당 교회에 뺑이치다가 말년에 '아 시발 종교 좆까 나 기악곡 할거야 빼애액!'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평생동안 다양한 곡을 쓰다가 죽었다.

사실 바흐가 살던 시절에만 해도 음악가에 대한 대접은 딱히 좋지 못하였다.

물론 이태리같은 곳에서 존나 잘 나가는 거장들도 있었지만, 그 당시의 바흐는 지금처럼 그다지 잘 평가받는 사람이 아니었고

요즘으로 치자면 테크닉적으로 대단한 피아니스트(당시엔 오르가니스트)에 가까웠지 작곡으로서 대단히 주목받은 작품은 아주 그렇게 많진 않았다고 한다.

당시 저작권의 부재 등 음악가의 권리가 약했던 것도 한몫했지만 역시..

뭐 그래도 굉장히 잘나가는 편이긴 했었다. 지금의 바흐의 위상에 비하면 당대 대중의 평가는 빛을 바랬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정도로 안습이라서 그렇지.

어떤 시절에는 돈도 못벌었는데

본인의 작품에 딱히 이름도 못넣고 출판사에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일이 많았는데, 본전까지는 못얻어도 그나마 헐렁한 주머니를 좀 채웠다고 한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기 때문에 당시 잘나갔던 음악을 들으러 가기 위해 도보(!!)로 400키로를 걸어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말년에는 유행을 따르지 못해서 오르간이나 돌리는 노땅이라는 가혹한 평가도 간혹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자 생전보다고 훨씬 좋게 재평가 되었다.

낭만주의 시대가 되었을 때 멘델스존이 선대의 안알려진 작곡가들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달리던 도중,

어떤 교회 지하창고에 먼지쌓여있던 바흐의 칸타타 악보 하나를 득템한 후 그의 음악적 유산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멘델스존의 최고 업적 중 하나가 바흐를 후대에 재평가할 수 있도록 자료를 많이 찾고 연구했다는 것이다.

무튼 그런 후대의 노력에 의해서 교양방송의 클래식 프로그램 짤 때 그의 노래가 자주 나오게 되었다.

잠이 안 올 때는 조용한 곳에서 헤드폰을 끼고 평균율을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