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니우스
| 로마 제국의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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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레리우스 (동방 정제) |
→ | 리키니우스 (동방) |
→ | 리키니우스 (동방) |
→ | 리키니우스 (동방) |
→ | 리키니우스 (동방) |
→ | 리키니우스 (동방) |
→ | 콘스탄티누스 1세 (통일) | ||||||
| 막시미누스 다이아 (동방 부제) |
발레리우스 발렌스 (동방) |
마르티니아누스 (동방) | ||||||||||||||||
|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
→ | 리키니우스 (서방 정제) |
→ |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
→ |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 ||||||||||||
| 콘스탄티누스 1세 (서방 부제) | ||||||||||||||||||
| 막센티우스 (서방) |
→ | 막센티우스 (서방) | ||||||||||||||||
| 막시미아누스 (서방 정제) | ||||||||||||||||||
| 재위기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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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8년 11월 11일 ~ 324년 9월 18일 (15년 315일) | |||||||||
로마 제국의 제44대 황제.
서방 정제로 커리어를 시작해 동방으로 넘어가 동방 황제가 되고 서방의 콘스탄티누스 1세와 마지막까지 겨루던 인간이다.
원래 별 보잘것없는 범부였으나 갈레리우스의 짱친이었던 덕에 308년 11월 11일 서방 정제로 임명된다. 원래 부제를 다음 정제로 임명하는 게 국룰인데 우정으로 국룰을 깨버린 탓에 이는 막센티우스, 막시미누스 다이아 등의 불만을 샀다.
311년 갈레리우스 사후에는 실질적으로 그의 영토가 동방에 있었고 이미 동방 황제라고 봐도 무방했다.
앞서 말했듯 막센티우스 및 다이아를 적으로 두고 있었던 터라 일단 콘스탄티누스 1세와 동맹을 맺었다. 311년~313년은 막센티우스+막시미누스 다이아 vs 콘스탄티누스+리키니우스 대결이었다.
312년 10월 28일 먼저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를 밀비우스 다리에서 밀어버리며 승리를 차지한다.
313년 2월 3일에는 콘스탄티누스 1세와 함께 그 유명한 밀라노 칙령을 내려 제국 내의 기독교를 공인했다.
뒤이어 313년 4월 30일 리키니우스가 치랄룸에서 다이아를 상대로 승리하며 동방의 패권을 잡았다.
이 시점이 되면 위의 틀처럼 개 지랄맞은 사두정치 내전은 어느 정도 수습되고 서방의 콘스탄티누스와 동방의 리키니우스 단 둘만 남게 된다.
당연히 두 명의 태양이 공존할 수는 없는 법이다. 316년부터 둘의 사이는 틀어졌으며 같은 해 10월 발레리우스 발렌스를 공동 황제로 지목한다.
그러나 317년 콘스탄티누스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며 공동 황제 발레리우스 발렌스가 처형당했으며, 이미 이때부터 승산은 콘스탄티누스에게 기울었다.
320년 리키니우스는 콘스탄티누스가 밀어주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보복을 개시했다. 그러나 이는 자살행위나 다를바 없었다. 당시 로마에 살던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콘스탄티누스 편에 붙어버린 것이다.
324년 최종 결전이 일어났다. 먼저 7월 3일 하드리아노폴리스에서 패배해 비잔티움으로 몰렸으며, 공동황제로 마르티니아누스를 세웠으나 9월 18일 비잔티움 인근 크리소폴리스에서 패배하며 마침내 리키니우스의 패배로 끝이 났다.
이렇게 로마 제국은 사두정치 개시 후 약 30년만에 콘스탄티누스를 중심으로 통일되었고, 패배한 리키니우스는 그래도 콘스탄티누스의 여동생의 남편이었던 덕분에 목숨은 부지했다.
인 줄 알았으나 325년 고트족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마르티니아누스와 함께 처형당했다.